할머니 한 분이 진료를 받으러 오셨습니다. 기침을 콜록콜록 하시면서 감기가 잘 안 떨어진다고 말씀하셨습니다. 또 9월말에 보건소에서 무료로 맞혀주는 독감예방주사를 맞았는데도 벌써 감기에 걸렸다고 ‘독감예방주사는 아무짝에도 쓸모없다’며 불평이 대단하셨죠.
어떤 아저씨 한 분이 노모와 부인, 아들과 딸을 모두 데리고 진료실로 들어왔습니다. 식구들 모두 집단으로 독감예방주사를 맞겠다고 했습니다. 본인이 작년에 독감예방주사를 맞고 나서 겨울에 감기 한 번 안 걸리고 잘 지냈다고 ‘독감예방주사는 정말 좋다’고 칭찬했습니다.
왜 다를까요?
이런 상황이 발생하는 이유는 근본적으로 감기와 독감, 그리고 독감예방주사에 대한 이해가 부족하기 때문입니다. 독감은 일반적인 감기와는 다른 질병으로, 독감을 일으키는 바이러스는 보통의 감기 바이러스들과는 다른 ‘인플루엔자’라는 특별한 바이러스입니다.
독감예방주사는 이 인플루엔자의 일부 성분을 추출하여 만든 주사약으로, 접종 후에 인플루엔자에 대한 면역력을 얻게 만드는 작용을 합니다. 따라서 종류가 전혀 다른 일반 감기 바이러스에 대한 예방과는 아무 관련이 없는 것이죠. 독감예방주사를 맞고서 일반 감기에 안 걸리기를 바라는 것은 마치 소아마비 예방접종을 하고 홍역에 안 걸리기를 바라는 것과 전혀 다를 바가 없죠.
그러면 왜 인플루엔자(독감)에 대해서만 예방주사를 권할까요?
그것은 이 ‘독감’이라는 병이 보통의 감기와는 달리 ‘일부 사람들’에서는 치명적일 수 있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이런 ‘일부 사람들’에게 독감예방주사를 우선적으로 권하고 있습니다. 이런 ‘일부 사람들’에 속하는 분들은 65세 이상의 모든 남녀, 면역이 억제되어 있는 환자, 당뇨병, 신부전, 만성폐질환, 만성심장질환, 만성간질환, 만성혈액종양질환을 앓고 있는 환자, 집단시설 수용 환자, 임산부 등이 있습니다. 그리고 이런 사람들과 접촉이 많을 것으로 예상되는 의료인, 임산부나 노인 혹은 영아를 돌보는 직업에 종사하는 분들은 전염예방의 목적으로 예방접종을 반드시 받아야 합니다.
예방주사를 매년 맞아야 하는 이유는 뭘까요?
그 이유는 매년 겨울마다 서로 다른 종류의 독감 바이러스가 기승을 부리기 때문입니다. 어떤 해는 홍콩B, 어떤 해는 방콕A 등등. 따라서 우리가 매년 맞는 독감예방백신은 세계보건기구(WHO)가 금년에는 어떤 종류가 유행할 지를 면밀히 검토해보고 잘 예측해서 만드는 새로운 백신입니다.
따라서 아주 우연히 작년과 금년에 같은 종류의 독감바이러스가 유행하지 않는 이상 작년 예방주사를 금년에 맞거나 하는 것은 도움이 되지 않습니다. 자 이제 앞에서 말씀하신 할머니와 아저씨의 말씀이 두 분 다 틀렸다는 것을 알 수 있겠죠?
독감 아닌 감기는 어떻게 예방할까요?
그 방법은 바로 모두가 알다시피 평소에 건강을 잘 유지하여 저항력을 키워 두고, 감기가 유행할 때 되도록 많은 사람들이 모이는 장소를 피하며, 금연하고, 귀가 후에 손을 잘 씻고 양치질을 하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