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누리, 왜 이렇게 어려운 길로 갔을까? 달로 향하는 궤적

2022년 12월 27일, 다누리가 달 궤도 진입을 성공했습니다. 다누리는 8월에 지구를 출발해 4개월 동안 거의 600만 킬로미터 가까이 항행을 했는데요. 드디어 달 궤도에 진입한 것입니다.

당초 항우연은 다누리의 임무궤도 진입기동을 총 5회 수행하는 것으로 계획하였습니다. 그러나 1차 진입기동(12.17)을 통해 다누리의 비행 데이터를 성공적으로 확보하고, 기동운영 안정성을 확인하였습니다. 이에 항우연은 남은 4회 기동(2,3,4,5차)을 2회(2,4차)로 단축하는 것으로 계획을 변경하였습니다. 그 결과 임무궤도 진입기동은 총 3회(1,2,4차) 수행되었고, 다누리의 달 궤도 진입도 당초 계획보다 이틀 앞당겨진 12월 27일에 확인되었습니다.

오랜 연구와 기다림이 마침내 결실을 볼 수 있게 될 것입니다.

다누리가 비행한 궤도 (출처: 한국항공우주연구원)

위 사진은 다누리가 4개월 동안 비행한 경로를 나타내는 사진입니다. ‘참 오래 열심히도 비행했구나’ 하는 생각이 드는 한편으로, 이런 의문도 듭니다. 왜 이렇게 길고 복잡한 경로를 간 것일까요?

지구와 다누리 사이의 거리는 최대 155만 킬로미터였고, 비행한 거리는 총 594만 킬로미터에 달합니다. 지구와 달 사이의 거리인 약 38만 킬로미터와 비교하면 최대 거리는 4배에 달하고 비행한 거리는 15배를 넘는 겁니다. 꼭 이렇게 길고 어려운 길로 가야만 했던 걸까요? 그냥 바로 가면 안 되는 걸까요?

지구에서 달까지 단번에

직접 전이 궤적

직접 전이 궤적

당연히 바로 갈 수도 있습니다. 위의 그림처럼 지구에서 달까지 곧바로 가는 방법을 “직접 전이 궤적”이라고 부릅니다. 그림에서는 지구와 달의 위치를 고정했기 때문에 구불구불하게 가는 것처럼 보이지만, 지구와 달의 자전과 공전을 고려하면 실제로는 최단 경로로 가게 됩니다.

직접 전이 궤적은 달 탐사 초창기, 냉전 시대에 미국과 소련이 앞다퉈 달로 우주선을 보낼 때부터 사용된 궤적입니다. 지구에서 달까지 바로 가는 궤적인 만큼 가장 빠른 궤도인 동시에 궤적 설계도 매우 단순하다는 장점이 있죠. 달로 유인 우주선을 보낼 때 자주 선택되는 궤적이기도 합니다.

하지만 냉전 이후에는 직접 전이 궤적을 사용하는 일은 점차 줄어들었습니다. 첫 번째 이유는 이 궤적을 이용한 비행을 실제로 성공시키기가 꽤 어렵기 때문입니다. 특히 달로 향하는 비행을 처음 시도하는 국가들에게는 더더욱 어려웠습니다. 직접 전이 궤적이 어려운 이유는 역설적이게도 이 궤적이 가장 빠르기 때문입니다. 우주선이 비행하다 보면 예측하지 못한 변수로 인해 궤도에 약간 오류가 생기기도 하는데, 이 경우에는 지구와의 통신을 거쳐 궤도를 수정해줘야 합니다.

그런데 직접 전이 궤적을 이용한 비행에는 보통 3일에서 6일 정도 소요됩니다. 그러니 매우 짧은 시간 내에 문제를 해결해야만 하는데, 우주 비행에 대한 요령이 없는 국가에서는 어려운 일입니다. 짧은 시간을 비행하는 만큼 매우 정밀한 발사체를 사용해야 한다는 것도 단점 중 하나입니다. 정밀할수록 발사체가 비싸지니까요.

또한, 이 궤적은 지구나 태양의 중력을 전혀 이용하지 않아 그만큼 연료도 많이 필요합니다. 이런 문제점들 때문에 요즘의 우주선은 직접 전이 궤적이 아닌 다른 궤적을 많이 이용하는 편입니다.

지구를 빙글빙글 돌아가는

위상 전이 궤적

위상 전이 궤적

달로 처음 탐사선을 보내는 국가가 일반적으로 선택하는 궤적은 “위상 전이 궤적”입니다. 중국의 ‘창어’, 인도의 ‘찬드라얀’, 이스라엘의 ‘베레시트’, 일본의 ‘카구야’가 이 궤적을 선택해 달 탐사를 진행했죠. 위 그림처럼 지구를 몇 바퀴 돌면서 점점 달과 가까워지는 궤적인데, 다누리도 맨 처음 설계할 때는 위상 전이 궤적을 선택할 계획이었습니다.

위상 전이 궤적의 가장 큰 장점은 쉽고 유연하다는 것입니다. 비교적 단순한 궤도를 그리기 때문에 쉽고, 비교적 기간이 길어 여러 문제 상황에 대처하기 수월합니다. 이 궤적을 선택할 경우 약 3주에 걸쳐 달로 향하게 되는데, 직접 전이 궤적에 비해 기간이 훨씬 깁니다. 충분히 여유를 가지고 시행착오를 거칠 수 있기 때문에 달 탐사를 처음 시도하는 국가에서 선택하기 적합합니다.

이 궤도는 지구를 돌기 때문에 그 관성력을 이용할 수 있는데, 이로 인해 연료가 조금 덜 들어갑니다. 하지만 실질적으로는 직접 전이 궤적과 차이가 많이 나지 않고, 경우에 따라서 오히려 더 많은 연료가 필요한 경우도 있다고 합니다.

다누리가 비행한 궤적

WSB 전이 궤적

WSB 전이 궤적

다누리가 선택한 궤적의 이름은 “WSB 전이 궤적”이라고 하며, WSB는 Weak Stability boundary의 줄임말입니다. 이 궤적은 그림에 빨강색 네모로 표시한 “라그랑주 점”을 지나간다는 것이 가장 큰 특징입니다.

라그랑주 점

라그랑주 점은 우주선이 지구와 태양을 기준으로 완전히 정지하여 머무를 수 있는 지점을 말합니다. 그게 뭐 그리 특별한가 싶지만, 우주 공간에는 마찰이 없어 정지하는 것이 매우 어렵습니다. 따라서 완전히 정지하기 위해서는 지구와 태양의 중력, 그리고 우주선의 관성력이 완전히 평형을 이뤄야만 합니다. 이러한 지점을 라그랑주 점이라고 하며, 오직 5개만 존재합니다.

라그랑주 점은 우주 탐사에 적극적으로 이용되고 있습니다. 정지된 위치에서 관측하기 때문에 좋은 관측 결과를 얻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태양과 지구 사이에 있는 L1 지점은 언제나 태양을 바라볼 수 있어 태양 관측에 활용됩니다. 1995년에 발사된 태양 관측 위성인 SOHO가 L1 지점에 자리 잡고 있죠. 태양 반대편에 위치한 L2 지점은 반대로 태양 빛을 받지 않는 것이 장점으로, 최근에 발사된 제임스웹 우주 망원경도 이 L2 지점에 자리하고 있습니다.

우주 비행에는 라그랑주 점이 어떻게 이용될까요? 이를 알기 위해서는 라그랑주 점이 가진 또 다른 특성을 알아야 합니다. 앞서 라그랑주 점에서는 중력과 관성력이 평형을 이루어 우주선이 정지할 수 있다고 하였습니다. 여기에서 중요한 것은 우주선이 “어떻게” 정지하냐는 점입니다. 안정적으로 정지해 있는지, 아니면 위태롭게 정지해 있는지 말입니다.

라그랑주 점과 같이 여러 가지 힘이 서로 상쇄되어 평형을 이룬 지점을 물리학에서는 “평형점”이라고 하는데, 이 평형점에도 종류가 있습니다.

안정 평형점과 불안정 평형점

왼쪽의 그릇 모양에 공을 조심스럽게 내려놓는다고 생각해보겠습니다. 그릇의 경사면에서는 아무리 살짝 내려놓아도 중력 때문에 물체가 계속 바닥으로 굴러떨어질 겁니다. 하지만 그릇의 바닥에서는 공이 구르지 않고 가만히 있을 수 있겠지요.

오른쪽의 언덕 모양에서는 어떨까요? 경사면에 공을 내려놓으면 당연히 굴러떨어집니다. 경사면이 아닌 꼭대기에 놓으면 공은 가만히 있을 수 있습니다. 물론 아주 조심스럽게 내려놓아야겠지만요.

그릇의 바닥과 언덕의 꼭대기에서 공이 정지할 수 있는 이유는 중력과 수직항력이 서로 평형을 이루기 때문입니다. “평형점”의 개념을 적용하면, 그릇에서는 바닥이 평형점이고 언덕에서는 꼭대기가 평형점인 거죠.

하지만 언덕과 그릇의 평형점 사이에는 큰 차이가 있습니다. 평형점에 정지시킨 공을 밀어본다고 생각합시다. 그릇이라면 공이 경사면을 따라 구르면서 올라갔다가 다시 떨어져 평형점으로 돌아올 겁니다. 하지만 언덕이라면, 공이 경사면을 따라 굴러떨어져 평형점으로 영영 돌아올 수 없게 되겠지요. 그릇과 같이 살짝 움직여도 다시 평형점으로 돌아오는 경우를 “안정 평형점”, 언덕과 같이 살짝 움직이면 평형점으로 돌아올 수 없게 되는 경우를 “불안정 평형점”이라고 합니다.

여기서 핵심은 불안정 평형점에 있는 물체는 아주 작은 힘만으로도 움직일 수 있다는 점입니다. 우주선의 이야기로 돌아오면, WLB 전이 궤적이 지나는 라그랑주 점은 불안정 평형점의 일종입니다. 따라서 라그랑주 점 가까이 가면, 아주 작은 힘만으로도 우주선을 달 쪽으로 보낼 수 있겠죠. 그래서 WLB 전이 궤적은 엄청나게 긴 길이에도 불구하고 가장 연료가 적게 드는 궤적입니다. 기존의 궤적에 비해 25% 가까이 연료를 줄일 수 있다고 알려져 있죠.

우주 비행에서 연료를 줄이는 것은 엄청난 일입니다. 단순히 연료 비용을 줄이는 데에서 그치지 않습니다. 연료를 줄이면 연료를 줄인 만큼 다른 탑재체를 더 실을 수 있게 됩니다. 즉 연료를 줄인 만큼 임무를 더 많이 할 수 있다는 겁니다. 우주 비행에 필요한 천문학적인 비용을 훨씬 효율적으로 쓸 수 있게 되겠죠.

다누리의 비행을 처음 계획할 때는 총 5개의 탑재체를 실어 위상 전이 궤적을 이용하고자 하였습니다. 하지만 NASA와 협조하는 과정에서 하나의 탑재체를 추가하게 되었고, 따라서 연료를 줄이기 위해 WLB 궤적을 이용한 것입니다.

사실 WLB 궤적은 상당히 복잡하기도 하고, 라그랑주 점을 정확하게 지나기 위해 정밀성도 높아야 합니다. 지구와 멀리 떨어져야 하기에 통신 장비도 철저히 준비해야 하죠. 연료를 줄이는 일은 이런 단점을 감수하고도 선택할 만한 일인 것입니다.

다누리의 긴 여정이 무사히 끝나도록

지구에서 달까지 가는데 이용할 수 있는 경로와 그 장단점들을 알아보았습니다. 처음에는 마냥 길고 복잡한 길을 간다고만 생각했던 다누리. 하지만 다누리가 WSB 전이 궤적을 선택한 데에는 다 이유가 있었습니다. 연료를 줄여 더 많은 임무를 수행하고자 한 것이었죠.


2022년 12월 27일, 달 임무궤도에 안착한 다누리는 이제 1년간 달 표면 탐사를 수행합니다. 우리나라 우주 기술의 위대한 성과인 동시에 하나의 시작점인 다누리가 긴 여정을 무사히 마치고 임무를 수행하여, 우리나라의 우주 기술에 더 많은 발전을 가져올 수 있도록 끝까지 함께 응원해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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