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의 아파트 전세가율이 최근 50%마저 붕괴될 조짐을 보이면서 주택시장에 위기감이 감돌고 있다. 전세가율이 주택시장 전망을 미리 예측할 수 있는 선행지표나 다름없기 때문이다. 전세가율이 높을 수록 매수자는 상대적으로 적은 자본금을 투입해 내 집을 장만할 수 있다. 전세를 안고 주택을 매입하는 갭(GAP)투자가 주로 이 무렵에 이뤄진다. 따라서 전세가율이 높을수록 매수수요가 늘고 주택가격 상승을 견인하는 효과가 있다. 반면, 전세가율이 낮으면 갭투자가 어려워지면서 주택시장 위축을 가져오게 된다. 전세가율이 가파르게 하락할 경우엔 ‘역전세난’의 뇌관이 될 수도 있다.
서울 전세가율 50% 붕괴 목전…강남구·송파구·용산구는 이미 붕괴
고금리 현상과 깡통전세에 대한 우려로 인해 서울 아파트 전세가율 50% 붕괴가 초읽기에 들어갔다는 분석이 잇따라 나오고 있다. 한국부동산원에 따르면 서울 아파트 평균 전세가율은 54.7%에 불과하다. 전국 전세가율 67.5%에 크게 못 미치며 2012년 5월(54.7%) 이후 가장 낮은 수치다. KB부동산 통계자료를 살펴보면 상황이 더욱 좋지 못하다. 서울 전세가율이 51.2%로 50%대 붕괴를 목전에 두고 있다. 한국부동산원과 KB부동산 통계자료의 공통점은 전세가율 하락세가 시간이 지날수록 더욱 뚜렷해지고 있다는 점이다. ‘역전세난’도 고민해 봐야할 시기가 다가오고 있음을 의미한다.
올해 1월, 서울 25개 자치구 중에선 종로구 전세가율이 63.9%로 가장 높았으며 △중랑구 62.4%, △중구 61.9%, △강북구 61.4%, △구로구 60.8%, △관악구 60.7% 순으로 나타났다. 나머지 20개 자치구는 50%로 내외의 전세가율을 기록했다. 특히 서울의 부촌인 강남구와 송파구, 용산구 전세가율은 40% 후반에 머물렀다.
강남 불패신화 명성 흔들…역전세난에 ‘몸살’
서울 부동산시장을 선도하던 강남권도 역전세난을 피해가지 못하는 분위기다. 교육에 따른 이사수요가 많은 겨울방학시즌임(1·2월)에도 불구하고 전세시장은 여전히 힘을 쓰지 못했다.
실제, 대치동 학원가 바로 옆에 위치한 ‘래미안 대치팰리스’ 전용 84A㎡형은 2021년 11월 전세가격이 최고 21억원(25층)까지 치솟았었다. 하지만 올해 2월 동일주택형이 14억3,000만원(4층)에 전세계약이 이뤄졌다. 1~2년 새 전세가격이 절반 수준으로 떨어진 아파트도 강남권에선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다. 서초구 반포동에 ‘반포자이’ 전용 84A㎡형은 지난 2월 12억원(22층)에 세입자를 맞이했다. 이는 고점을 찍었던 2021년 12월 당시 거래된 22억원(1층)보다 10억원가량 낮은 금액이다. 강남8학군을 벗어난 송파구 상황은 더욱 좋지 못하다. 약 1만여 세대 메머드단지인 ‘헬리오시티’ 전용 84㎡E형 전세가격은 지난 해 6월 15억8,000만원(20층)으로 고점을 찍었다. 하지만 올해 2월 6억2,500만원(29층)에 전세계약이 이뤄졌다. 이는 약 1년 새 무려 60.4%나 떨어진 가격이다. 전세가격을 낮췄음에도 불구하고 세입자를 구하지 못하자 차라리 아파트를 처분하려는 집주인들도 늘고 있다. 송파구 가락동에서 10년째 부동산을 운영 중인 ‘K’대표는 “전세가격이 한창 높던 2021년과 2022년 무렵 전세를 안고 매수했던 고객들의 부담이 상당한 것으로 알려졌다” 면서 “보증금 마련에 발을 동동 구르던 집주인들이 결국 급매로 선회하면서 주택가격 하락에도 적지 않은 영향을 미치고 있다”고 전했다.
혼돈의 서울 전세시장…올해도 약세 면치 못할 듯
서울 전세시장은 올해도 여전히 약세를 면치 못할 전망이다. 미국의 기준금리인상이 사실상 기정사실화되고 있는 데다가 빅스텝(기준금리 0.5%인상)마저 언급되고 있어서다. 올해 최종금리가 최고 6%대에 도달할 가능성마저 점쳐지면서 불안감은 더욱 확산되고 있다.
미국의 금리인상 속도에 맞춰 국내 기준금리도 불가피하게 움직일 것으로 예상된다. 높아진 금리만큼 전세시장은 위축될 수밖에 없다. 깡통전세에 대한 우려가 확산되고 있는 상황에서 금융비용마저 높아지면서 전세에 대한 매력이 반감됐기 때문이다. 결국 소비자들은 ‘전세’대신 ‘반전세’나 ‘월세’를 선택하는 소비자들이 늘어날 것으로 예상된다. 반면, 임대인 입장에선 예치금리 상승에 따라 전세 선호 현상이 점점 강해지고 있다. 게다가 기존 임차인에게 보증금을 돌려주기 위해선 새 임차인을 맞이해야 하므로 전세공급은 꾸준할 전망이다. 결국 전세시장에서 수급불균형을 이루면서 전세가격 하락이 당분간 지속될 가능성이 커 보인다.